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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모델 넘어 앵커·쇼호스트·은행원까지…가상 인간 실제 세상에 스며들다

박인주 | 기사입력 2022/01/03 [15:21]

광고 모델 넘어 앵커·쇼호스트·은행원까지…가상 인간 실제 세상에 스며들다

박인주 | 입력 : 2022/01/03 [15:21]

광고 모델 넘어 앵커·쇼호스트·은행원까지…가상 인간 실제 세상에 스며들다

중앙선데이

 

 

 

윤혜인 기자 오유진 기자 

 

 

[SPECIAL REPORT]
가상 인간이 온다

 

로지(한국·2020), @rozy.gram, 인스타그램 팔로워 11만명,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2021년 수입 15억원

로지(한국·2020), @rozy.gram, 인스타그램 팔로워 11만명,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2021년 수입 15억원

#배우 김수현이 가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21일 엔터테인먼트 기업 골드메탈리스트는 디지털 콘텐트 전문개발사 이브이알스튜디오와 함께 소속 배우 김수현을 가상 인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3D로 구현한 김수현을 다양한 디지털 콘텐트에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계획이다. 한류스타가 가상 인간으로 제작되는 건 처음이다.

점·주근깨·솜털까지 정교하게 표현

전 세계 가상 인간

전 세계 가상 인간

가상 인간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 캐릭터에 머무르던 시대는 지났다. 현재 가상 인간은 인간과 유사한 외형은 물론이고, 행동과 화법까지 정교하게 구사한다. 그래서 가상 인간은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인공지능(AI)이 점, 주근깨, 솜털까지 정교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3D 캐릭터’에 가까웠던 사이버 가수 ‘아담’과는 다른 존재다. 2020년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운 경험을 했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가상 인간임을 밝히지 않고 로지의 인스타그램을 운영한 4개월 동안 많은 대중은 로지를 실제 인간 모델로 여겼다. 이후 로지가 가상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버추얼 휴먼스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외모, 성별, 인종, 국적이 다른 또 다른 로지 130명이 활동하고 있다. 가상 인간은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존재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가상 인간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분야는 브랜드 홍보 모델이다. 세계 각국의 뷰티, 의류 브랜드에서 진짜 인간 대신 가상 인간을 홍보 모델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샤넬, 프라다, 디올은 가상 인간 ‘릴 미켈라’를 홍보 모델로 선정했고, 남아프리카 출신 가상 인간 ‘슈두’는 발망, 페레가모, 삼성전자 모델로 활동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간 로지가 지난 1년 동안 체결한 전속 계약은 13건, 협찬 광고는 100건이 넘는다. 수만에서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가상 인간을 활용한 홍보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실제로 가상 인간의 SNS 게시물은 진짜 인간보다 평균 3배 더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이들의 주요 팬층은 MZ세대다. AI 기반 인플루언서 마케팅 분석회사 하이프오디터에 따르면 가상 인플루언서 팔로워의 73%가 18~34세다. MZ세대가 가상 인간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가상 세계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 가상현실에 익숙해져 있어 가상 인간을 이질적인 존재가 아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상 인간을 팔로우하고 있는 MZ세대는 가상 인간을 평범한 인플루언서 로 생각한다. 로지의 팔로워 김모(13)씨는 “최근 가상 인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로지를 알게 됐다”며 “로지 게시물에 댓글을 달면서 로지와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모(26)씨도 “로지님의 스트릿한 느낌과 코디, 색감 조합이 좋아서 팔로우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가상 인간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는 ‘AI 기술’의 진보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상 인간이 실제 인간과 유사하게 구현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가상 인간이 상용화되긴 어려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술의 발달 그 자체보다 기술이 주는 이점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광고주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는 실제 사람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선호하는 이미지의 모델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상 인간이 더 빨리 우리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던 환경적 요인도 있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면서 비대면 활동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디지털 감수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소 생소했던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 삶 전반에 퍼졌다. 직장인은 메타버스 내 사무실로 출근하고 그 공간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무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는 현 가상 인간의 인기에 대해 “코로나19로 비대면 소통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마침 성숙기를 거친 메타버스, 가상현실(VR) 등의 기술이 공급되면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 일어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정 평론가는 “디지털 초창기에는 가상 세계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메타버스에 대해 얘기할 정도다”라며 “카카오뱅크 등 온라인 은행을 이용할 정도로 가상에 대한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상 인간의 광고를 보고도 소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인간 ‘미켈라’ 연 140억원 벌어

릴 미켈라(미국·2016), @lilmiquela, 인스타그램 팔로워 310만 명,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간, 2019년 수입 140억원

릴 미켈라(미국·2016), @lilmiquela, 인스타그램 팔로워 310만 명,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간, 2019년 수입 140억원

향후 가상 인간은 더욱 상용화돼 일상생활과 산업 전반에 걸쳐 그 역할이 확산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2025년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가 14조원에 돌파하며 실제 인플루언서 시장(1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로지’는 지난 1년 동안 광고 수익 15억원을 벌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310만 명인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 인간 ‘미켈라’의 2019년 한 해 수익은 1170만 달러(약 140억원)에 달한다. 유명 배우의 모습을 한 가상 인간이 개발되는 이유다.

가상 인간의 놀라운 가능성을 알아본 일부 기업들은 자체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2월 롯데홈쇼핑은 가상 인간 ‘루시’를 선보였다. 루시는 다른 가상 인간처럼 실제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움직임과 음성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거친 루시는 이미 지난달 22일 신입 쇼호스트로 데뷔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시각효과 전문 기업 자이언트스텝과 함께 자사의 VR 게임 ‘포커스온유’ 여주인공 ‘한유아’를 가상 인간으로 구현했다. 스마일게이트는 향후 음원 발매를 시작으로 한유아의 가수 데뷔도 준비 중이다.

국내 기업 가상 인간 활용 사례

국내 기업 가상 인간 활용 사례

가상 인간은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중 은행이 AI 행원 도입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 11월 AI 행원을 정식으로 채용했으며, 신한은행도 전국 66개 영업점에 72명의 AI 행원을 보급했다. AI 행원은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 가상 인간에 AI 챗봇을 탑재한 것으로 현재는 사전에 설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한 고객 응대와 짧은 대화만 가능하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보다 자연스러운 대화 및 고객 응대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AI 아나운서가 실제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인공지능 기업 딥브레인AI가 제작한 MBN 김주하 AI 앵커는 낮 12시 뉴스를 보도한다. 실제 인물의 목소리와 특정 소리를 낼 때 얼굴 변화를 학습한 AI가 텍스트를 보고 소리에 맞는 목소리와 입 모양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욕설 내뱉는 ‘가짜 AI 대선후보’ 등장도

가상 인간이 진짜 인간을 대신해 활동하는 세상, 시대에 맞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시작됐다. 지난달 6일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출범식에 등장한 AI 윤석열은 그 논의를 촉발한 대표적 사례다. AI 윤석열은 딥러닝 기술로 윤 후보의 평소 영상과 음성을 학습해 구현됐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곳에서 AI 윤석열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짜 후보가 아닌 가상 인간을 내세워 만든 이미지가 유권자를 자칫 착시에 빠뜨려 민주주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도 제기됐다. 또 이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14일 SNS에 욕설을 내뱉는 ‘가짜 AI 윤석열’이 벌써 등장했다. 가상 인간이 상용화되는 과정에서 현실 세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메타버스에서 가상 인간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바로 가상 인간을 대하는 우리가 넘어야 할 ‘불쾌한 골짜기’가 그것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이론이다. 인간이 인간과 유사한 존재에 호감을 느끼다가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불쾌감을 느끼고, 그 수준을 넘어서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았다면 다시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내용이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엔비디아가 지난 11월에 공개한 대화형 아바타 토이-미를 진짜 인간의 모습이 아닌 캐리커처에 가까운 형상으로 만든 데는 불쾌한 골짜기 문제가 있었다”며 “지금은 불쾌한 골짜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도기적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혜인·오유진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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